소나기 2

물의 이력서 / 김정기

물의 이력서 김정기 아무리 보아도 닳지 않는다. 달력도 없는 흰 벽과 반듯한 복도 이해할 수 없는 간판을 읽으며 헤맨다. 내가 물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고 꺼내지지 않는 젊음을 안으로부터 끌어올린다. 그 흰 벽에서 물이 흐르고 보이지 않는 손들이 나와서 확대경으로 살핀다. 오래전 산수유 꽃에 이슬로 내려와 가슴이 빨간 새의 지저귐에 흘러 살 개천 돌 틈 사이에 몸을 적시고 금강의 상류로 동해바다로 떠다니다가 대서양 구름떼에 섞여버렸다. 웨스트체스터 상공에 서 소나기로 내려 잃어버린 진찰실에서 맑은 유리잔에 부어진다. 그동안 내가 맑게 스미는 한 방울의 물이었음이. © 김정기 2012.03.31

몸 / 김종란

몸 김종란 100개중 99개쯤 통점을 찾아 찌른다 아프다 아 그래서 산 거야 산 것은 아프면 요동을 친다 장구처럼 탱탱하게 부어 올랐던 언니의 배도 격렬하게 쥐어짜며 산 것의 시위를 벌인 건가 죽음은 먼 산 그늘에서 묵묵히 소요하고있다 아프지 않으려 치료 받으며 아파한다 한계를 넘나들며 살아있어 아름다운 것과 그 헛됨과 고통을 받아 드리며 지친 몸을 일으켜 기름칠을 한다 신을 경외하며 신이 지으신 아파서 펄펄 살아있는 몸을 관리한다 아비와 어미가 걱정하고 염려했던 것처럼 몸을 측은히 여기며 살아있음에 연민을 품는다 눈물 어린 눈으로 소나기 지나간 들판을 우짖으며 날아가는 새를 사랑한다 © 김종란 2011.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