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7

|詩| 아버지의 방패연

아버지의 방패연 아버지가 지금 내 아들보다 더 새파랗게 어린 나이였을 때 나는 철부지 초등학교 2학년이다 아버지와,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내 자식이 얽히고설킨 씨앗이 이어지는 별하늘로 이윽고 불어오는 겨울 바람 아버지가 대나무를 가늘게 잘라서 내 앞에서 방패연을 만드신다, 창호지에 창호지에 달라붙은 대나무 뾰족뾰족한 잔뼈, 잔뼈 연을 띄운다 등골 시린 지구 끄트머리에서 연신 요동질 치는 연줄, 가느다란 실 그러나 어느새 실이 끊어져, 툭 끊어져 옆집 마당 감나무 가지에 내려앉아, 사뭇 바람결에 흔들리는 반투명 젖빛 창호지 내 아버지의 사각형 방패연 시작 노트: 유년기의 향수심이 트라우마를 능가하는 것 같다. 힘겨운 기억을 솎아낸 과거는 아름다운 과거로 변천한다. 지금도 겨울 하늘에 점잖게 군림하던 아버..

발표된 詩 2023.03.01

바다시계 / 김종란

바다시계 김종란 초침을 감춘 바다 느긋하다 창문도 없고 현관문도 없다 하늘은 깊음으로 생명은 비릿함으로 안으며 표정은 더욱 부드러워진다 빛을 은닉한 *Renoir 의 'Spring Bouquet' 상처의 붉은 줄이 불현듯 빛나는 우리 우리 기다리다 빛을 은닉한 Renoir 의 'Spring Bouquet' 당신은 품에 안는다 낮아지며 깊이 깊이 스며든다 우연하게 여기 평안하게 바다를 숨쉰다 꼬리만 보이는 돌고래 바다 테이블 위에는 커피 한잔 해초처럼 흔들리며 이리 저리 몸이 기울어지며 바다를 마신다 용서에 익숙한 당신 바다를 등지다 바다에 안기다가 당신 안에서 바다를 밀고 간다 *Renoir (French 1841~1919) © 김종란 2011.10.04

|詩| 뱀 무늬 수박

버그적 단칼로 몸이 와스스 쪼개지면서 살가운 체액을 하늘로 뿜어내는 풋풋한 힘 저 수박 속 숨은 힘을 보세요 생명은 무지합니다 연거푸 겉 다르고 속 다른 수작을 부리는 푸른 풀섶 뱀 무늬 수박을 더듬어 보세요 단호한 칼질 제대로 한 번 하지 못하고 무지의 비린내 풀풀 풍기는 수박을 어루만지다시피 당신은 지금 울고 있구나 칼이 무서워 너무나 무섭다면서 눈을 질끈 감은 채 그다지도 © 서 량 2010.08.28 - 2021.08.11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9670008 미주중앙일보 – 미주 최대 한인 뉴스 미디어 www.koreadaily.com

발표된 詩 2021.08.29

|詩| *카타토니아

숲이 긴장하는 순간 돌개바람이 불어온다 미생물은 우울하다 미생물이 얼어붙는다 미생물은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립니다 미생물이 난데없이 우울증을 벗어나네요 첨벙, 강물에 뛰어드는 당신은 열대성 돌개바람 속 원시인 중증 정신질환자다 주기적 긴장증(緊張症)의 노예 옴짝달싹 하지 않는 미생물 숨도 쉬지 않는 생명의 노예다 * Catatonia – 두뇌활동이 정상이지만 대화를 시도해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정신질환 증세, 때로는 몸 동작도 정지된 상태를 유지한다 © 서 량 2021.03.25

2021.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