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맹 2

|컬럼| 23. 청록색맹을 의심하다

청록색맹을 의심하다 춘분이 가까이 오면서 겨울나무 잔가지에 푸릇푸릇한 색깔이 스며든다. 봄이면 우리를 찾아오는 빛은 단연코 녹색이다. 춘색(春色)이 완연한 요즈음 청색과 녹색의 차이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전통적으로 우리 뇌리에 깊이 각인돼 있는 '청산(靑山)'이라는 어휘가 참 신비롭고 이상하다는 느낌이다. 산을 멀리서 보면 푸른색으로 보이니까 그러려니 하다가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가 갸우뚱해 진다. 산을 가까이 다가가 보는 순간 산은 녹색이다. 나무와 숲이 엄연히 녹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왜 산을 녹산(綠山)이라도 하지 않았는가. 젊은 남녀를 녹춘(綠春)이라 하지 않고 왜 청춘(靑春)이라 했는가. 오죽하면 한때 우리 조상들이 하나같이 청색과 녹색을 분간하지 못하는 색맹들이었다는 ..

은빛 꽃 / 김정기

은빛 꽃 김정기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고양이는 여름마다 색맹을 앓는다 화초밭의 색깔 모두 빨아 먹고 물기마저 흡수한 그의 눈은 은빛만 보인다 찬란한 세상을 흑백으로 뒤집어 꽃피고 지고 이파리들 새순도 적요함으로 다스려 밑그림만이 선명하다 여름은 온통 은빛 빗방울이 되어 가는 길을 묻고 있는데 몸의 주름살 펴서 찬물에 헹구는 색깔이 없는 황홀함이여 윗동네 클린턴이 사는 차파쿠와 집값 같이 계절은 정확한 현찰이다 가늘고 굵은 선이다 가끔 우리 집을 기웃거리는 고양이의 눈에 보이는 빗방울은 은빛 꽃이다 © 김정기 2010.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