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갗 3

|컬럼| 33. 필(feel)이 꽂히다

필(feel)이 꽂히다 근래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우리말 슬랭, '필(feel)이 꽂히다'는 말에 대하여 생각해 봤다. 이 이상한 구어(口語)는 영어와 우리말의 조합으로 태어난 혼혈아적인 표현이다. 세상이 급한 세상이라 때로는 아예 '필 꽂히다'라며 조사를 빼기도 하고 강조를 할 때는 '필이 팍팍 꽂힌다'며 힘주어 말하면서 언어생활의 최첨단을 걸어가는 우리들이 아닌가. 어떤 '느낌'이 들었다고 차분하게 말하는 대신에 꼭 그렇게 'f'와 'p'를 분별하지 못하는 영어발음을 재래식 한국말과 교배시키는 우리의 정서가 놀랍고 새롭다. 무엇이 꽂히다니! 얼마나 아플까.  이것은 가령 전신을 새까만 천으로 휘감은 닌자(Ninja)가 어느 날 밤 지붕에서 뒷마당으로 사뿐 뛰어내려 표창이라도 휙! 휙! 던지는 발상인..

겨울 포도 / 김정기

겨울 포도 김정기 몸을 핥는 땅은 섬뜩한 칼날이다 맨살 위에 새겨진 황토 흙의 흠집이다 허물 벗는 세포들의 몸부림에 흰빛 하늘이 내려와 어깨를 덮는다 돌아서는 지구의 혓바늘에 소금을 뿌리며 굳은 것은 이렇듯 쓰라린 것이다 아리고 뜨거운 것이다 살갗으로 데운 시간이 질척인다 침묵이 가장 잘 알 수 있는 말이었다 떠나는 그대의 언 옷을 부여잡고 산 위에 떠 있는 노을을 적신다 낮아지고 낮아지는 겨울을 말린다 © 김정기 2010.12.22

|詩| 달팽이 몇 마리

시간이 당신을 아무리 재빠르게 지나친다 해도 이제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겠다 봄비가 내리고 있어요 병동 아득한 복도 끝에서 누군가 소리칩니다 몇 알의 신경안정제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한 줌 햇살이 내 살갗에 와 닿아요 요즘은 하고 싶은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간간 남 생각을 하지 않는 우리의 나쁜 버릇을 어쩌나 싶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며 얼굴을 치켜드는 당신이 참 좋아요 나는 기꺼이 허무를 감싸 안는다 습기 그득한 시간, 시간의 갓길을 천천히 기어가는 연체동물 몇몇을 실눈을 뜨고 보고 있어요 이제는 어엿한 봄이 아닙니까 밖이 © 서 량 2019.03.25

2019.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