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빛 / 김종란 몸빛 김종란 투영된다 침향이 머물듯 등대와 강물 아득히 조우(漕遇)하듯 오트밀을 덥히고 커피를 만들며 붉은 햇빛 안에 투영된다 기다란 잿빛 미소 눕히고 일어서는 몸 비가 한 차례 통과하는 눈을 껌뻑이며 사람의 집과 집 사이 빈터에 투영된다 잠시 바람보다 무겁게 머문다 © 김종란 2013.09.18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05
떠나는 소리 / 김종란 떠나는 소리 김종란 당신 거기 있었나요 부르는 소리 높은 산정 절벽 위 널따란 바위에 누워 하늘에 들어 하늘빛에 얼굴이 잠겨 당신이 떠난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누구나 떠나고 나도 떠나온 걸요 떠난다는 것은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 생선 비늘처럼 번쩍이기도 하는 몸을 지니고 태어나서 떠난답니다 마음 다잡고 간답니다 아마 다시 볼 수 없는 아마 죽을 때까지 볼 수 없겠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떠나는 소리 그 씁쓸함에 혹 씁쓸함을 더하지 않았나 하는 빈터에 울릴 떠나는 소리 © 김종란 2011.10.14 김종란의 詩모음 2022.12.26
진양조의 공간 / 김종란 진양조의 공간 김종란 당신은 가두지 않겠어요 바람 부는 곳 눈 내리는 곳 낙엽 지는 곳에 있어요 지켜 보고 있어요 비인 곳 까마득한 산불 일어 미세하게 느리게 침묵하는 것들은 함께 흔들리어 늦은 볕 아래 투명하게 불 붙다가 텅 비어져요 산뜻하게 베어져 이 빈터에 놓이네요 잠시 눈시울에 머뭇거리다 흘리지 못해 반짝 빛나다 별빛 아래 물기 듬뿍 머금은 흰 국화(菊花) 사라지는 것을 은유(隱唯)하며 이 비인 곳을 지나네요 *국악의 가장 느린 장단 © 김종란 2009.10.21 김종란의 詩모음 2022.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