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4

봄날 / 김정기

봄날 김정기 보이지 않는 물이 흘러간다. 몸 안에서 피어나는 안개가 가냘픈 실핏줄을 건드린다. 어두움은 가끔 힘줄을 만들어 어디까지 흘러 마지막 길을 트일 것인가. 어느 봄날 묻어두었던 사랑이 큰소리 내며 다가오는 황홀함. 갑자기 눈부신 세상과 아득한 것이 이루는 합창 내가 가는 길목에 우두커니 서 있는 봄 산수유가 주렁주렁 꽃밥을 터뜨리고 대책 없이 그늘 지우는 밑으로 그립다는 언어에는 눈을 돌리던 넝쿨들이 기어 올라오고 있다. 어디를 가나 당신의 흙이 묻어나는 터에 이 알뜰한 봄을 써 버리고 있다니 꽃송이 하나하나에 말 걸어보면 답장 없는 연서에 달콤한 말들을 내 이마에 쏟아 붇는다. 가는 봄날 한 자락을 붙잡고. © 김정기 2011.05.08

봄날 오후 종이 접기 / 김종란

봄날 오후 종이 접기 김종란 잠시 가볍게 네모난 빈 잔에 물을 붓다 한가로이 집중하며 꽃대를 꽂는다 포물선을 그리며 만나는 발목을 손을 발을 살짝 종이 접기 할까 트라이앵글 트라이앵글 사망문고에서 날아온 꽃송이들 얼은 뺨 부딪는 소리 휘영청 짊어져버린 검은 석탄 덩어리 무거워도 꽃이니까 봄이니까 휘인 사각형 안에 빠듯하게 곡선으로 일어나 철제 계단 아래 비스듬히 중세의 건물이 누워있어 깜깜한 오후에도 하늘엔 블루베리 과일행상이 블루베리를 쌓지 유리처럼 빛나는 얼은 손으로 종이 접기 © 김종란 2010.03.10

|詩| 편안한 마음

키가 큰 떡갈나무가 내 그림자를 보듬어 주는 한나절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바람 부는 봄날 어느 날 떡갈나무 몸체를 애써 붙잡아주는 내 거동이 이상하다 느슨해진다 키가 큰 떡갈나무가 번쩍이는 해와 달 반대쪽 그 자리에 마냥 우두커니 서서 그냥 그대로 지복(至福)을 누릴 것이야 봄이며 겨울이며 별로 가리지 않고 정신병동 폐쇄병동 사무실에서 도시락을 먹은 후 내가 창밖을 내다볼 때 같은 때 © 서 량 2017.05.05 - 2021.01.19

2021.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