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4

|詩| 하늘색 책상

하늘색 책상 -- 마티스의 그림 “책 읽는 소녀, 꽃병”에게 (1922) 펼쳐진 책에 어둠이 깔려요 꽃병에 꽂혀 있는 꽃 꽃에 내려앉는 기생잠자리 반만 열려 있는 여자의 눈 내 무의식도 반만 열려 있다 등에 수직으로 꽂히는 무지개 머리 속이 가려워요 캄캄해 詩作 노트: 책을 읽을 때 절반은 무의식이다. 무의식이 제로인 상태는 정신건강에 안 좋아요. 마티스의 책 읽는 소녀 등에 수직으로 팍팍 꽂히는 무지개가 참 보기 좋다. 책을 건성건성 대충 읽어도 괜찮다. © 서 량 2023.06.07

회색 세상 / 김정기

회색 세상 김정기 가끔 물감은 펑펑 쓸어져 몸에 달라붙는다. 회색에 점령당한 채 세상의 색깔은 없어져 오히려 단아하다 청동색 파리 몇 마리 잡고 여름을 떠나보내며 그 색조가 지워지는 떨림을 듣고 새 계절의 만남이 저리고 저리다. 시간이 걷어 간 색채를 돌려받으려 손가락을 펴 회색 그림자를 모조리 지우고 여자는 날마다 새로운 무지개를 그린다. 일곱 가지 빛깔은 계속 회색에게 침범 당해도 털실로 모자 떠서 쓴 랩 가수의 음정처럼 계속 세상은 채색된다. 칠해도 칠해도 세상은 아직 회색 그래도 단풍에 뒤덮여 끝없이 달려갈 회색 세상 © 김정기 2013.08.29

|詩| 몽고반점* 옛날

꼬리뼈에 이끼 미역 냄새 물씬한 이끼 내 누추한 어릴 적 청량리 역전 언덕 위 집 눅진눅진한 석회 벽 구역질 감미로운 갓 지은 집 벽 냄새 바다 냄새 새 집 새 세상 내 집이라네 이제는 천정 높고 창문 많은 현대식 주택 사시사철 울긋불긋 무지개가 난동을 부리는 그곳 바람 부는 청량리 언덕 위 철도관사 금세 푸드득 날아갈 듯 번듯하고 쓸쓸하고 마음에 쏙 드는 집 한 채라네 *갓난아이의 엉덩이, 등, 허리 같은 곳에 멍든 것처럼 퍼렇게 되어 있는 얼룩점. 몽고 인종에게서 흔히 발견되고 다섯 살쯤 저절로 없어진다. © 서 량 2007.08.17 – 2022.12.03

2022.12.03

|詩| 뜬 눈으로 꾸는 꿈

내가 당신의 서늘한 살결과 머리칼을 탐하는 것은 물론 내 자신의 눈을 통해서다 눈 없이 나는 못 산다 이상도 해라 당신을 탐하는 내 천연색 꿈 색깔이 눈을 감으면 감을 수록 더더욱 선명해지는 것! 내가 뜬 눈으로 꾸는 꿈은 맨손으로 잡으려고 손사래 치는 초점이 흐리멍덩한 무지개다 알록달록한 빛의 비밀을 품고 오늘도 꾹 감겨만 있는 당신 눈이다 © 서 량 2002.07.20 - 2008.09.26 (문학사상사, 2003) 시집 소개: http://www.munsa.co.kr/GoodsDetail.asp?GoodsID=670

발표된 詩 2008.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