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한 무의식 2

|詩| 베토벤의 무의식

-- 2003년 4월 10일 누이동생 서정선의 작곡 발표회에 참가하여 비엔나 Palais Palffy 베토벤홀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면서 이마 주름살 깊이 박힌 완고한 생각을 읽는다 오선지 콩나물대가리가 꿈틀대는 밑으로 비엔나 팔피회관 베토벤홀 빨간 양탄자에 편안히 드러누운 베토벤 데스 마스크에서 숨어있는 것들은 끝까지 숨어있을 것이다 베토벤의 아픈 귀가 내 뇌신경을 건드린다 열정 소나타 3악장 첫 소절 꽈당! 무너지는 불협화음이 손목을 비틀면서, 손목을 비틀면서 조금씩 느려지는 리듬감각도 저 무시무시한 무의식에서 오는 것이다 내 열 손가락에 한사코 매달리는 클라리넷을 혼이 빠지도록 뒤흔드는 베토벤의 무의식에서 시작 노트: 19년 전 내 손가락은 지금보다 재빠르게 움직였다. 속도감이 주는 경쾌감을 과시했을..

2022.06.18

|詩| 시론토론 --문정희에게

일년 좀 넘어서 뉴욕 북쪽으로 차를 몰면서 옆 자리에 앉은 정희에게 나는 내 시만 머리에 쏙쏙 들어오고 남의 시는 마음에 차지 않으니 어쩌면 좋지? 하며 말했다가 얼른 후회한다. 빨강 노랑 나뭇잎들이 차창에 마구 달려드는 가을 하늘 곁으로 정희가 깜짝 놀라 나를 잡아먹을 것 같은 얼굴로 노려본다. 위험천만한 발상! 이 사람아, 설사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해도 그렇게 함부로 발설하는 게 아니지. 일년 좀 넘는 동안을 한 달에도 몇 번씩 낯을 붉히면서 왜 내가 그런 교만한 말을 했나 하며 고민한다. 하다못해 저 무시무시한 무의식에 도사린 어떤 무슨 뾰족한 이유라도 있겠지. 엄청난 발언 뒤에는 늘 구질구질한 이유가 있으니까. 오늘은 내 서재 창 밖 나뭇잎들이 한 70 내지 80프로가 다 떨어지고 거의 앙..

2021.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