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멀미 김정기 잎들이 밀려온다 도처에서 초록 폭탄에 맞아 숨졌던. 우리는 오랫동안 푸를 줄 알고 외면해버린 아까운 나날 이제 다시 색칠해도 빛 바래져 젖은 잎들만 누어있다. 어둡지 않으면 볼 수 없던 반짝임을 이제 나누어 갖으려 숲으로 간다. 당겼다 놓은 화살이 살갑게 박혀 올 때 불길이 되어 활활 타오르는 초록의 얼굴 꺼지지 않는 불 속에 던져져서 초록 그을음에 온몸을 사루며 세상 고개를 넘는다. 고향집 안방 벽지에 그려진 색깔에 구토하던 건방진 젊음이 흔들린다. 사방이 거무스름한 벽으로 다가오는 저녁마다 엽록소 한 방울에 타는 입을 추겨 잊어버린 이름을 떠올리면서 살아난다. 넉넉한 품에 숨어서 숨 쉬는 고요가 초록 번개에 기절한 낮잠을 깨운다. © 김정기 2013.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