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3

봄, 우주 / 김정기

봄,우주 김정기 그대는 다른 행성의 언어를 쓴다. 그 소리들이 껍질을 뚫는다 허물 벗은 소나무 새순이 발그레하다가 연두가 들어있는 봄의 첫줄 첫사랑의 눈빛이다. 가버린 날에 살던 땅에서 카톡을 보내온 냉이 꽃다지 원추리에 들어있는 우주의 창문이 열린다. 벌거벗은 공기들이 손을 내밀면 폭죽으로 터지는 여린 입김 자라나는 법을 터득한 직선을 그으면 떠난 계절의 남루를 벗어버리는 우리의 지난 날이 넘친다. 책상 위에 먼지 한 알 봄을 신은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 새살이 돋는 모양새까지 눈여겨 보아지는 새로 열리는 날들 번지는 색깔에 꽃 편지 쓰는 당신은 봄, 우주 © 김정기 2019.02.27

먼지 알러지 / 김정기

먼지 알레르기 김정기 공중에 먼지까지도 마셔버려 속에 꿈틀대는 것이 있다 먼지 알레르기라고 처방 받으니 이제 가장 작은 것만 보인다. 작고 단단해서 더 이상 부서질 수 없어 그가 정처 없이 떠날 때 나는 한 알의 먼지로 남아 아무데나 붙어서 함께 가는 길. 아무리 좁아도, 깜깜하고, 막막해도 내 안에 등불 켜져서 앞길을 밝히고 모두 놓아버린 낱말들을 삼켜 말들이 배를 채워 먼지가 되어, 그렇게 둔갑해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토해내는 초롱초롱한 반짝임. © 김정기 2009.11.29

|詩| 진공소제기

해와 달과 지구가 서로를 끌어당긴다 해와 달과 지구가 서로를 잡아먹으려고 안달을 부리는 거예요 그거는 해와 달과 지구는 전생에 팽팽한 관계였대 그 쓸쓸하고 팽팽한 내막을 아무도 모른대 그들은 서로를 힘껏 빨아드리면서 점점 더 부풀어오를 것입니다 썰렁한 우주를 헤집고 해와 달과 지구의 먼지와 코로나 바이러스를 인정사정없이 흡수하는 휴대용 진공소제기 공허한 진공소제기 외로운 진공소제기 그게 당신의 유일한 무기일 것입니다 아까 그런 흉기를 손에 든 내 자세를 생각했다 © 서 량 2020.08.23

2020.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