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갈기 2

|詩| 악보

악보 -- 앙리 마티스의 '피아노 치는 여자'에게 (1924) 사막에 굴러다니는 잡초 정교한 지문, 안경알 벗어 놓은 팬티 악보는 동물입니다 단음(單音)으로 울리는 소리 달리는 말, 말갈기 보이지 않는 손가락끼리 잘 어울리네요 피아노 의자에 편하게 앉아서 악보를 읽는 여자 시작 노트: 피아노 치는 여자의 자세가 편해 보인다. 손가락이 느긋해야 좋은 연주가 나오지. 피아노 악보를 확대해 보니 음표 대신에 이상한 그림들 투성이다. 안경 같기도 하고 벗어 놓은 팬티 같기도 한 자질구레한 형상들이 악보라니, 마티스는 괴이한 화가다. 나는 그래도 그의 그림이 참 좋다. © 서 량 2023.03.29

|詩| 간이인간(簡易人間)

한밤중에 암행어사가 출두한다 암행어사가 탄 말갈기가 찬 바람에 휘날린다 암행어사가 말없이 어둠을 쏘아본다 어둠에 구멍이 나고 바람이 멎는다 애시당초 암행어사의 당찬 언어는 바람을 수평으로 가르는 임무를 띠었다는 소문이었어 간이역에 역장이 존재하지 않아 간이역에 신(神)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의 환기가 좋을 뿐더러 채광도 좋아 간이역은 단순하다는 이유로만 존재하지 당신은 간소하고 알기 쉬운 사람 샹들리에 화려한 레스토랑이 크게 내키지 않아요 가까운 간이식당에 가서 언어의 시장끼를 달래야겠어 메뉴가 한둘 밖에 없는 사람, 말에서 훌쩍 뛰어내려 내 꿈 담장 밖에 서있는 당신은 위풍당당한 암행어사다 © 서 량 2021.12.0

2021.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