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4

|詩| 대형사고

겨울이 싸락눈을 감싸 안고 아무 생각 없이 부서지는 광경이다 꺾어진 겨울 나무 잔가지를 보십시오 밤 사이 대형사고가 터진 것이 틀림 없습니다 겨울 감상법은 진정 당신 마음 하나에 딸렸어요 나무와 바람과 하늘이 한 판 크게 어우러지는 새벽이잖아요 시린 코를 하얀 마스크로 덮은 겨울이 바람 속에서 잔기침을 하는 풍경이다 아무래도 겨울을 숙청해야 되겠어, 하며 당신은 내게 낮게 속삭인다 들숨이 잦아든다 © 서 량 2020.12.17

2020.12.18

|컬럼| 360. 워리

2020년 4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뉴욕 의료인들이 고초를 겪고 있다. 약사, 슈퍼마켓 종업원, 배달업자, 의사같은 직업은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직종이다. 차가 몇 대 안 보이는 유령 도시의 고속도로를 나 또한 매일 질주한다. 병동 직원들은 마스크를 쓰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은 환자들의 민낯이 편안해 보인다. 한 직원이 부럽다는 듯이 투덜댄다. “They are not anxious at all” - 저들은 도무지 걱정을 하지 않네요. ‘anxiety(걱정, 두려움)’, ‘anguish(고민)’, ‘anger(분노)’처럼 ‘앵~’으로 시작되는 말은 전인도유럽어에서 좁고, 답답하고, 옥죄인다는 뜻이었다. 노여워서 토라진다는 뜻의 ‘앵돌아지다’라는 우리말도 ‘앵’자 돌림이라고 당신이 주장한다면 그 또..

|詩| 하늘색 마스크

독수리 여러 마리 훨훨 날아간다 매서운 눈초리로 세상을 훑어보는 중 우리는 더 이상 하늘을 우러르지 않는다 거대한 천체의 그림자가 하늘을 덮는 동안 지구는 연거푸 옆구리에 손을 대고 기침을 합니다 기침 소리가 어느사이엔가 어스름한 저녁 녘 로마사람들이 거리에서 부르는 스타카토 혼성합창 소리로 왕왕 울리는 중이다 팔을 안쪽으로 V자로 보기 좋게 꺾고 옆으로 눕혀 당신을 툭, 치면서 팔꿈치 인사를 하는 동안 비린 꽃망울 내음이 코끝에 스친다 © 서 량 2020.03.15

2020.03.16

|컬럼| 358. 마스크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걸어간다. 젊은 여자, 은퇴한 대학교수, 급하게 라면을 먹고 편의점을 나온 대학생, 정치적 이념이 강한 중년 남자, 또는 겁 없는 무신론자들이 제각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걸어간다. 마스크는 2020년 3월 현재 중국 우한이 발원지로 알려진 코로나 바이러스의 침투를 막아내는 방패막이다. 마스크는 투구를 쓴 고대의 병사들이 빗발치듯 날아오는 적군의 화살을 막으려고 방패로 몸을 가리는 자기방어 메커니즘이다. 마스크는 절대절명의 구명책이다. 마스크는 은성한 가장무도회에 참가하는 소박한 가면이다. 마스크는 자신이 포식동물의 먹거리가 아니라는 시그널을 할로윈데이 가면의 무서운 이미지로 전달한다. 마스크는 포식성이 강한 상대방을 혼동에 빠뜨려서 내 안전을 꾀하려는 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