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김정기 평온의 숲에 칼끝을 대니 붉은 도시에 흐르는 냇물은 맑고 깨끗하다. 내 책꽂이에 꽂힌 난해한 시같이 길을 못 찾아 내가 내는 도시계획대로 사각형을 만들고 그날 친정집에서 먹던 달콤함이 이 마을에 넘친다. 당신의 임지에서 듣던 나팔소리에 섞여 총성이 수박 안에 가득해 터져 나올 때 사방에서 갈증이 물소리를 낸다. 수박은 이미 지난 시간을 향해 구르고 굴러 닿을 수 없는 도시의 길목을 지키고 수박 씨 같은 글씨로 소설을 쓰던 큰오빠가 무겁던 젊음을 지고 걸어오고 있다. 내가 수박을 자르고 있는 이 밤에 세월은 물구나무를 서서 엉키고 있다. © 김정기 2012.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