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 3

집이 말한다 / 김정기

집이 말한다 김정기 누런 개 한 마리 눈에 넣고 부서져 내리는 은하수를 지붕에 주어 담는다. 담장 너머로 몰래 훔쳐보는 카이오라는 수놈은 아일랜드 사람이 주인이지만 우리가 던져주는 햄 조각에 반하여 우리 집에 낯선 기척이 있으면 짖어 댄다. 순한 눈매를 갖은 그는 희미해지는 나를 데리고 낯선 바다를 건너가려고 한다. 우리 집이 말한다. 그가 건너는 대서양을 따라가면 조국이 더 멀어진다고. 유혹의 팔소매를 뿌리치고 혈혈단신 아픈 다리를 끌고 가지만 고향산천은 멀기만 하다. 뜰에 무궁화, 봉선화, 꽈리를 키우고 정선아리랑을 들으며 여기서 세월을 삭히라고. 집이 말한다. 뉴욕에서 젖은 몸 말리고 무엇이든 서툰 대로 버티면 누명도 벗어진다고. 30년을 살아온 잉글리시 투더형 우리 집이 말한다. 방에 달린 문들도..

물의 이력서 / 김정기

물의 이력서 김정기 아무리 보아도 닳지 않는다. 달력도 없는 흰 벽과 반듯한 복도 이해할 수 없는 간판을 읽으며 헤맨다. 내가 물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고 꺼내지지 않는 젊음을 안으로부터 끌어올린다. 그 흰 벽에서 물이 흐르고 보이지 않는 손들이 나와서 확대경으로 살핀다. 오래전 산수유 꽃에 이슬로 내려와 가슴이 빨간 새의 지저귐에 흘러 살 개천 돌 틈 사이에 몸을 적시고 금강의 상류로 동해바다로 떠다니다가 대서양 구름떼에 섞여버렸다. 웨스트체스터 상공에 서 소나기로 내려 잃어버린 진찰실에서 맑은 유리잔에 부어진다. 그동안 내가 맑게 스미는 한 방울의 물이었음이. © 김정기 2012.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