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게 2

꽃이 지는 이유 / 김정기

꽃이 지는 이유 김정기 꽃이 지는 것이 혹시 내 잘못이 아닐까 책상 위를 기어가는 벌레 한 마리 잡아서 바람에 꺾인 나무 가지를 내버려두어서인가 추위에 떠는 옆집 개를 그냥 바라만 보아서인가 새로 피어나는 연한 잎을 끓는 물에 넣은 탓일까 곁에서 빛나는 사람들 이름도 나와 함께 흐려지고 햇볕과 시간이 공모하여 제철이 저물어가면서 나도 시들어 사방으로 흩어지며 떨어지고 있으니 꽃들도 동행이 되려고 지고 있는 것일까 검은 흙에 묻히려고 설레는 것일까 꽃이 저야 떠난 사람이 돌아온다고 약속을 지키려고 지고 있는지 땅 위에 떨어진 꽃잎을 집어 들으니 흘러간 날의 황홀한 필름이 혈관에 스며든다 조치원 역에 서있던 꽃다운 당신이 선명하게 상영된다 막을 내리지 않고 눈물겹지 않게 아직도 숨이 멎듯 달콤하게 그래서 꽃..

간결한 식사 / 김종란

간결한 식사 김종란 껍질 채 깎이어 향기로운 잼(jam)이고 싶어요 주황색 심장이 설탕 안에서 녹고 있군요 부드럽고 달콤하게 까칠하고 어려운 마음 투명한 유리병에 보이네요 살아서 한없이 구겨져 있으니 흰 접시위에 갓 구워 낸 생각 한 조각 놓아 보세요 다 녹아들지 못해 약간 씹을 수도 있는 쌉쌀한 마음 올려 놓지요 바닷가에서 어울려 노는 바람들 모아 차를 끓였어요 간결한 식사 깎이고 구겨지면서 쌉쌀하게 그러나 달콤하게 흰 도자기 잔에 담긴 바람에 가 닿는 부르튼 입 붉은 입 © 김종란 2009.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