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4

억새꽃 / 김정기

억새꽃 김정기 십일월이 떠나는 들녘에 서서 꽃을 피우는 친구여 밤마다 그림자가 나온다 연기가 나온다. 눈에서 입에서 버렸던 사람이 다시 찾아와 눈이 날리면 만날 수 있다고 알 수 없는 슬픔의 발원지에 힘든 나날을 이겨낸 나를 찾는 손짓이다. 늦가을 억새꽃으로 피어 바람을 타고 가는 길을 막는 손 물기 빠진 몸이 발붙인 웅덩이에서 물거울을 꺼내 본다 가을이 가고 다시 가을이 오는 그림자도 연기도 꽃이 되는 나이. © 김정기 2011.12.01

|詩| 늦가을 비

그러길래 내가 뭐랬어 곰팡이 냄새 물씬한 비가 누추한 강변을 적시는 그런 구질구질한 비가 내릴 때 같은 때 당신이 음침한 흑백사진을 찍는다거나 잃어버린 사랑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게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이라고 내가 몇 번을 당부했어 안 했어 화사한 햇살이 멀미처럼 출렁이던 늦가을 오후는 가고 없고 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비가 나 몰라라 하며 내린다 지하실에도 다락방에도 컴퓨터 모니터에도 날 보고 어쩌란 말이야 하며 큰 소리도 치지 않고 내린다 내일 죽어도 별로 할 말이 없다는 듯 거침 없이 죽죽 잘만 내린다 © 서 량 2010.11.23

2010.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