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5

기차 객실 / 김종란

기차 객실 김종란 창 밖에 해 뉘엿뉘엿 지고 전등 빛 안 그림자 자란다 네가 읽는 책만 환하다 너의 턱 선과 손과 종아리만 환하다 잠시 기차 객실에서 네 마음 물방울 지며 빛난다 빛이 더 많이 떨어져 쌓이는 등받이 번잡함은 네 풍경에 들어가 스러진다 적요하다 기차는 노을을 품고 달린다 네가 책을 읽는 그림 기차 창 밖은 내가 사는 노을이다 너에게 편승한다 그림으로 남은 너에게 다가가 비춰 본다 뒤섞여 진 무리수와 유리수 기차를 그린 그는 넘치는 부분 치밀한 부분 담담하게 큰 붓으로 마무리 한다 © 김종란 2012.05.14

겨울 포도 / 김정기

겨울 포도 김정기 몸을 핥는 땅은 섬뜩한 칼날이다 맨살 위에 새겨진 황토 흙의 흠집이다 허물 벗는 세포들의 몸부림에 흰빛 하늘이 내려와 어깨를 덮는다 돌아서는 지구의 혓바늘에 소금을 뿌리며 굳은 것은 이렇듯 쓰라린 것이다 아리고 뜨거운 것이다 살갗으로 데운 시간이 질척인다 침묵이 가장 잘 알 수 있는 말이었다 떠나는 그대의 언 옷을 부여잡고 산 위에 떠 있는 노을을 적신다 낮아지고 낮아지는 겨울을 말린다 © 김정기 2010.12.22

너의 끝 노래 / 김종란

너의 끝 노래 김종란 소나무 숲 끝머리 노을은 붉다 사람으로 걸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시간에 잠시 노을만 붉다 시간의 늪에 머무는 우리는 억새풀로 자라지 희게 서로 희게 가슴에 기대다 검게 서로 검게 가슴 두드리다 노을에 허리 잘리고 붉은 늪 무릎을 꿇었지 붉은 늪 서로를 베는 소리 서걱이지 무성하게 엉켜 자라는 우리의 모진 꿈 날선 꿈 낯설게 헤쳐 다니는 너의 벌거벗은 발 어느 노을 지는 숲, 너를 보듬어 네가 부른 노래, 이 먼 곳에서 이제야 듣는 소년의 노래 소나무 숲 끝머리에 타는 노을 너의 끝 노래 주황색 빛에 둘러 쌓인 이젠 숲의 노래 어두움을 예감하며 감싸 안는 神의 노래 © 김종란 2011.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