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시간 2

|컬럼| 467. 시니어 모멘트

노인네들은 겸손하다. 남의 도움을 받고 싶은 본능적 몸가짐이다. 애써 자세를 바로잡지 않으면 저도 모르게 등허리가 굽어지는 모습이 마치 무슨 용서라도 구하는 태도다. 노인네들은 공손하다. 그들은 많은 말을 하고 싶다. 같은 말을 앉은 자리에서 되풀이 하거나 전에 했던 말을 하고 또 한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 뜸을 들이며 쉼표 후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는 시간이 길어진다. ‘아, 그, 왜, 저’, 하는 간투사로 언어공간을 메꾸는 사이에 상대방이 몸을 꼰다. 나이를 먹을수록 옛날을 회고하는 것이다. ‘그때가 좋았어’, 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당신은 현재보다 과거가 좋았다는 속마음을 내비친다. 가난과 곤혹에 시달리던 시절을 회상하며 웃기도 하고 ‘개고생’ 하던 군대생활을 떠올리고 무릎을 치며 공감한다. 그때는 ..

벽돌 깨기 / 김정기

벽돌 깨기 김정기 벽돌에서 풋사과 냄새가 난다 컴퓨터 안에 열리는 벽돌은 못 말리는 식욕이다 창을 때리는 새벽 빗소리다 숨겨놓은 사랑이다 은빛 포장지다 눈 내리는 고향마을이다 언제나 처음인 것처럼 떨리는 詩다 사람보다는 나무가 꿰지 않은 구슬더미가 시인보다는 시가 좋아지는 겨울에 벽돌은 공을 맞고도 부서지지 않는다 안으로 안으로는 조여 안아 금강석이 된다 사각형 가슴에 묻어 놓은 벽돌에 빨려 들어간다 남은 시간이 아깝지 않다 © 김정기 2011.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