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5

|詩| 청동, 봄의 왈츠

벌거벗고 앉아서 손으로 턱을 고이고 생각하는 사람, 로댕의 애인 까미유 끌로델 작품 왈츠, 헐벗은 남녀는 시퍼런 청동이다 말년 30년을 정신병원에서 썩은 끌로델, 작년 1월에 아마존에서 $96 주고 산 청동 덩어리, 집에 불이 난 후 전셋집에서 사는 동안 식탁에 놓여 있던 조각품, 반질반질하다 지금은 내 책상 위에서 부동자세로 춤추고 있는 11인치 크기의 헐벗은 남녀 정신과 월간 신문, 2021년의 낙관적인 예후를 대서특필한 표지가 고개를 드는 모습, 바로 그 밑에 실린 의사 자살 기사, 신문은 일반인들보다 44% 높은 의사 자살률을 한탄한다 1년에 400명이 하루에 한 명 꼴로 스스로 죽는다지 저는 정신병원에 감금된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해요 신문이란 한갓 종이 쪼가리에 불과해 로댕의 ..

2021.03.16

|詩| 남녀, 혹은 종려나무

남자건 여자건 종려나무건 그렇게 키가 크면 우선 좀 싱거워 뵌대 왜 있지 작은 고추가 맵대 사람이건 황새건 기린이건 키가 크면 땅바닥에 있는 아담하고 우아한 것들이 눈에 잘 뵈지 않는대 눈과 땅과의 거리가 머니까 당연하대나 사랑하는 남자가 너무너무 그리워서 몸이 수척해진 얼굴이 갸름하거나 통통한 여자가 뚝뚝 흘린 눈물자죽이나 저 혼자 공연히 절망하는 남자가 탁! 뱉은 가래침 같은 것을 도무지 볼 수가 없다는 거야 눈이 저 꼭대기에 있는 것들은 당신과 나와 이 축축한 대지 위에 아담한 토담집 한 채 지어 놓고 같이 살고 싶어요 드높은 구름을 향한 목타는 함성 대신에 먼 우주의 정기가 내 허파꽈리를 나긋나긋하게 애무해 주기를 막연히 원하는 대신에 당신과 내가 등허리 따스한 구들장 아랫목에 아무때나 누워서 킬..

2008.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