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 4

뼈의 은유 / 김정기

뼈의 은유 김정기 처음으로 뼈들이 사는 마을을 기웃거렸네 어느 날부터 그들은 수런거리기 시작했고 낮은 울음이 낯익어 놓아주려고. 그래도 모반은 면하려고 잘 드는 가위로 싹둑 잘랐네 그런데 흔들릴 때마다 쏟아지는 가루백묵 닳고 삭아서 마른 소리가 난다. 미안하게도 그들이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네 허물어지는 관절에도 유혈은 없다. 아직 껍질 안에 있는 길을 살피며 점점 젖어가는 옷 안에 잔뼈들의 흐느낌이 들리는 한밤 오금이 저리고 떨리는 삭신을 들켜 쥔다. 빼앗긴 칼슘에도 반란은 일어 오래된 침묵에 뼈아픈 것들이 숨어사는 곳에는 눈물에도 뼈가 있었네 바람결에도 뼈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나니 멀지 않은 길이 아득하다. © 김정기 2016.02.04

물의 고요 / 김정기

물의 고요 김정기 소용돌이 물살 나뭇잎을 탄다. 북녘 어디에선가 떠돌이로 왔다는 그는 돌고 도는 세상이 어지러워서 반대로 반 바퀴 돌아 땅을 잃었다 땅의 물은 모두 산으로 올라가 둥근 원을 그으며 말없는 걸어 내려오고 밤잠은 어디서 자는지 누구는 짚북데기 속에서 떡갈나무 밑에서 보았다고 했다 호숫가에 갈대들이 찬바람에 흩날리던 날 그는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더란다. 한 다발 꽃을 피워내려고 검은 두루마기 껍질을 연못가에 벗어 놓고. © 김정기 2010.08.25

|詩| 자목련과 종달새

자주색으로 터지는 꽃잎 열림이 하늘을 부유하는 깃털 떨림이 몸서리치게 유한하다 당신의 결을 매만지는 나의 앎 그 절실한 앎도 유한해 자목련이 종달새와 덩달아 지지배배 하늘을 날아다니네 그들은 몰라요 꿈에도 알지 못해 오늘같이 하늘이 소리 없이 젖혀지는 동안 당신이 좀처럼 서글퍼 하지 않는다는 걸 시작노트: 집 차고 옆 굴뚝 앞에 핀 자목련 꽃을 사진 찍었다. 몇몇은 꽃잎을 활짝 뒤로 젖힌 자세다. 자목련과 종달새의 삶이 유한하다는 생각에 몸서리를 친다. 엊그제 한 블로거의 詩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종달새는 울지 않는다. 종달새는 다만 노래할 뿐. 자목련이 종달새와 함께 새처럼 훨훨 날아간다. ©서 량 2021.04.15

2022.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