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5

|詩| 맨발

맨발 -- 마티스의 그림 “담쟁이덩굴 가지를 든 여자”에게 1906 앞쪽 오른쪽 절반을 잎새들이 기어오른다 그늘에 서서 눈길을 아래로 던지는 여자 당신 정신상태 90%가 보라색 도는 자줏빛 배 왼쪽 옆구리 절반이 더워져요 눈썹도 빨개지네 詩作 노트: 37살의 마티스가 당시의 시대정신을 추종한다. 나도 그 나이에 좀 그랬던 것 같은데. 여체를 기어오르는 담쟁이덩굴이 간질간질할 것이다. 옆구리는 반만 달아오른다. © 서 량 2023.05.31

봄날 / 김정기

봄날 김정기 보이지 않는 물이 흘러간다. 몸 안에서 피어나는 안개가 가냘픈 실핏줄을 건드린다. 어두움은 가끔 힘줄을 만들어 어디까지 흘러 마지막 길을 트일 것인가. 어느 봄날 묻어두었던 사랑이 큰소리 내며 다가오는 황홀함. 갑자기 눈부신 세상과 아득한 것이 이루는 합창 내가 가는 길목에 우두커니 서 있는 봄 산수유가 주렁주렁 꽃밥을 터뜨리고 대책 없이 그늘 지우는 밑으로 그립다는 언어에는 눈을 돌리던 넝쿨들이 기어 올라오고 있다. 어디를 가나 당신의 흙이 묻어나는 터에 이 알뜰한 봄을 써 버리고 있다니 꽃송이 하나하나에 말 걸어보면 답장 없는 연서에 달콤한 말들을 내 이마에 쏟아 붇는다. 가는 봄날 한 자락을 붙잡고. © 김정기 2011.05.08

복사꽃 나무 그늘을 거닐며 / 김종란

복사꽃 나무 그늘을 거닐며 김종란 깨알 같은 소식에 귀 기울인다 누대에 걸친 서까래 대들보만큼 무거워 휘청이는 쉼표, 마침표. 몰래 후두득 봄비 소리에 묻히는 그늘을 구기고 구겨서 꽃으로 살아낸 것의 목소리 웃음소리 땅의 온기와 더불어 살아있던 것의 온기 무수히 지나가는 생명의 발자국 소리 죽이며 채 말이 되지 못한 두근거림으로 복사꽃에 가까이 다가간다 사랑에 다가가듯 거짓말처럼 연분홍 빛 그늘 © 김종란 2012.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