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3

남은 손가락 / 김정기

남은 손가락 김정기 아프리카 어느 섬에는 가족이 떠날 때마다 손가락 하나나 귓바퀴를 잘라 그 아픔으로 이별을 대신한다고 한다. 날카로운 열대의 잎으로 생살을 베이며 상처가 아물면 혈육을 잊지만 또 다음 이별이 오면 다음 손가락을 잘라 다섯 손가락이 없는 그는 어디 육신의 아픔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통증에 비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평생 정을 그리워하는 그의 유언이다. 남은 손가락으로 일하면서도 열 손가락의 힘을 일궈내는 사내의 미소가 화면에 뜰 때 나는 절벽 끄트머리에 무겁게 앉았다가 무중력의 세상으로 가볍게 떠오른다. © 김정기 2013.03.02

슬픈 포스터(가족) / 김종란

슬픈 포스터(가족) 김종란 슬픈 가족은(포스터) 없었다 스토리를 잃어버린 채 애드리브도 없고 상영되는 동안 관객도 없었다 슬픈 가족은 포스터가 이제 있다 잘 찢겨지지 않는 낡은 포스터를 지루하고 잔인한 스토리를 선택 해버렸다 애드리브는 용납할 수 없었다 관객을 쫓으며 상영되고 있다 포스터는 묻는다 (슬픈)가족이 될래요? (슬픈)포스터안으로 들어간다 영화는 상영 되야 한다 피곤하고 뻑뻑한 눈을 부릅뜨시라 포스터를 위해 슬픔을 둘둘 말아 옆구리에 끼고 뉴욕 이곳 저곳을 부에노스아이레스 이곳 저곳 기웃거린다 유서 깊어라 이 영화는 상영되고 재상영된다 자막에 찍혀 떠오르는 그대 가족들의 이름들 비스듬히 비켜선 진달래꽃들 검은 화면에 잠시 어른거린다 필름 낡아도 거부할 수 없는 상영 원칙에 의해 영화는 상영되고 ..

|컬럼| 129. 엄마가 없어지다니

'mother'는 영어, 독일어, 희랍어, 불어, 스페인어, 네덜란드 말 그리고 범어에 이르기까지 발음이 아주 비슷하다. 중국어로도 엄마를 '마마'라 하는데 이태리어와 스웨덴 말의 'mamma'와 그 발음이 똑같다. 아기가 엄마를 향해서 내는 비음(鼻音)은 기분이 좋을 때 콧노래가 나오는 심리와 같은 것으로 풀이된다. 불어의 'maman'는 콧소리가 세 번이나 들어간다. 음성학적으로 엄마는 명실공히 범세계적인 단어다. 1958년에 김종래(1927~2001)는 라는 장편만화로 전쟁 후 피폐했던 전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그 책은 술과 노름에 빠진 아버지 때문에 팔려간 엄마를 찾으려는 아들 금준이의 애환을 그린 우리 최초의 만화 베스트셀러였다. 는 이태리의 에드몬드 데 아미치스(Edmondo De Amic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