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을 덜거덕 열고 장독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면 고개를 푹 박고 들여다보면 내 사랑을 둥그렇게 구획하는 경계 안의 컴컴한 내막이 아우성치는 무시무시한 에코가 얼굴을 때린다 정신이 얼얼해지고 기차가 기적을 울리면서 금방 지나간 듯 귀가 멍멍해지는 에코! 지구가 암흑 속에서 꿈틀대는 격렬한 동작 값싼 교훈 같은 거를 들먹이는 고대소설의 권선징악 마음 착한 남녀가 막판까지 살아 남는 사연 그리고 또 있다 시인들은 너 나 다 아름답다는 망상 등등 하여튼 간에 빈 항아리 속에서 아! 하는 지독한 에코 때문에 지성이고 쥐뿔이고 아무짝에도 소용 없는 아늑한 이기심이 솟는다 아무 것도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혹시나 하며 항아리에 곰곰이 귀를 기울이다가 © 서 량 2005.12.28 2006년 12월호에 게재 시작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