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맨해튼 김정기 골목들은 엎드려 있었네, 숨죽인 그대 따라 떠나가는 것에 익숙해진 오늘은 이방인의 굽은 등 어루만지며 흔들리는 타향도 마지막 발길에 떠내려가고 플라자 호텔 녹 쓴 지붕에 묻었던 가을 햇살 이제는 눈물 없이, 쓰라림도 없이 올려다보았네. 고개 숙인 잎도 얼굴을 들던 날 빛나는 슬픔이 몰려와 한 솔기 바람을 만들었네. 그대의 침묵이 6 애비뉴를 녹이고 깨어진 가을 달을 다시 띄우고 강물을 끓이고 백만 개 태양을 잉태하는 불씨로 살아나고 살아나서 불을 피우네 땅거미가 덥힌 도시의 속살을 헤집고 쇼윈도 안에 펄럭이는 옷깃 조용히 전등이 켜지네 © 김정기 2015.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