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뿌리 김정기 부엌은 흔들렸고 어지러웠다 이제는 맛을 내고 약재로 쓰인다는 향기도 모양새도 없는 파뿌리를 손질하다가 문득 버린 친구의 목소리를 듣는다 손에 잡힌 바다는 얼어 터지고 뜨거울수록 식어가는 여름체온은 날마다 늘어나는 실금이 나의 물독을 깨려고 굵어져만 가고 들키지 않게 지우고 지운다 발을 헛디뎌 떨어진 낭떠러지에서 수많은 뿌리에 매달려 숨을 쉰다 너무 일찍 익혀버린 당신의 얼굴은 온통 세상 가득 돋아나 잊으려 해도 더 또렷한 물방울인 것을 빈 이웃집 벨을 누르며 온기를 거두는 마을에서 발길에 채여 나간 산더미 같은 뿌리들을 한 가닥 씩 씻어서 눕히는 손이 떨린다 돌아올 시간을 장담하며 떠나는 사람들 틈에 뼈들은 더 크게 소리 지르고 검은 머리는 하얗게 세어가고 멀어져간 시간들이 아우성치며 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