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토끼 이야기 / 김종란 흰 토끼 이야기 김종란 흰 토끼를 만났지 토끼를 품에 안고 들판을 걸었어 끝없는 여름 건너편으로 토끼를 놓아준다 나도 모르게 나는 한 마리 토끼, 세상이 온통 흰 구름으로 덮여 있네 토끼가 아닌 것이 없어 세상에 시계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네 나무의 키가 자라는 속도를 기록한다 눈금을 새겨 놓으려 해 세심하게 흰 토끼 순간, 시간을 뛰어넘어 들판 밖으로 사라졌어 © 김종란 2021.07.01 김종란의 詩모음 2023.02.03
물의 고요 / 김정기 물의 고요 김정기 소용돌이 물살 나뭇잎을 탄다. 북녘 어디에선가 떠돌이로 왔다는 그는 돌고 도는 세상이 어지러워서 반대로 반 바퀴 돌아 땅을 잃었다 땅의 물은 모두 산으로 올라가 둥근 원을 그으며 말없는 걸어 내려오고 밤잠은 어디서 자는지 누구는 짚북데기 속에서 떡갈나무 밑에서 보았다고 했다 호숫가에 갈대들이 찬바람에 흩날리던 날 그는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더란다. 한 다발 꽃을 피워내려고 검은 두루마기 껍질을 연못가에 벗어 놓고. © 김정기 2010.08.25 김정기의 詩모음 2022.12.22
Lent / 송 진 Lent 송 진 세상의 언어로 말하고 세상의 수치로 셈하고 세상의 조명 속을 떠돌다 다다른 곳. 범람하는 별들 속에 끝내 바래지 않을 하나를 찾아 징과 망치를 잡고 암벽 앞에 선다. 어둠을 뚫고 달을 깎는 쇠락한 육신이 울려내는 징 소리, 벼랑에 매달린 한낱 풀꽃이 파도를 넘보게 하고 핍진한 삶이 회..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1.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