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3

흰 토끼 이야기 / 김종란

흰 토끼 이야기 김종란 흰 토끼를 만났지 토끼를 품에 안고 들판을 걸었어 끝없는 여름 건너편으로 토끼를 놓아준다 나도 모르게 나는 한 마리 토끼, 세상이 온통 흰 구름으로 덮여 있네 토끼가 아닌 것이 없어 세상에 시계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네 나무의 키가 자라는 속도를 기록한다 눈금을 새겨 놓으려 해 세심하게 흰 토끼 순간, 시간을 뛰어넘어 들판 밖으로 사라졌어 © 김종란 2021.07.01

물의 고요 / 김정기

물의 고요 김정기 소용돌이 물살 나뭇잎을 탄다. 북녘 어디에선가 떠돌이로 왔다는 그는 돌고 도는 세상이 어지러워서 반대로 반 바퀴 돌아 땅을 잃었다 땅의 물은 모두 산으로 올라가 둥근 원을 그으며 말없는 걸어 내려오고 밤잠은 어디서 자는지 누구는 짚북데기 속에서 떡갈나무 밑에서 보았다고 했다 호숫가에 갈대들이 찬바람에 흩날리던 날 그는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더란다. 한 다발 꽃을 피워내려고 검은 두루마기 껍질을 연못가에 벗어 놓고. © 김정기 2010.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