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이력서 김정기 아무리 보아도 닳지 않는다. 달력도 없는 흰 벽과 반듯한 복도 이해할 수 없는 간판을 읽으며 헤맨다. 내가 물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고 꺼내지지 않는 젊음을 안으로부터 끌어올린다. 그 흰 벽에서 물이 흐르고 보이지 않는 손들이 나와서 확대경으로 살핀다. 오래전 산수유 꽃에 이슬로 내려와 가슴이 빨간 새의 지저귐에 흘러 살 개천 돌 틈 사이에 몸을 적시고 금강의 상류로 동해바다로 떠다니다가 대서양 구름떼에 섞여버렸다. 웨스트체스터 상공에 서 소나기로 내려 잃어버린 진찰실에서 맑은 유리잔에 부어진다. 그동안 내가 맑게 스미는 한 방울의 물이었음이. © 김정기 2012.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