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 5

꽃과 인터뷰 / 김정기

꽃과 인터뷰 김정기 내 몸에 꽃이 피다니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구나 시간에 앉은 흠집이 언제부터 싹터서 꽃이 되었고 소리칠 때마다 자라고 있었구나. 꽃잎, 한 겹씩 벗겨내서 말 걸어보자 이제 보니 너는 꽃이 아니었구나. 타관의 골목길을 돌고 돌아 나에게 안겨와 언제나 비로 다가와 눈물이 되었지 반짝이는 것들을 향해 들어설 때 새벽잠 깨어 뒤척일 때 찔러대던 가시가 꽃이 되다니 시만이 살길이라고 달려온 길 모퉁이에서 세상과 잡은 손을 놓고 말았지. 언제나 불씨를 갖은 꽃은 떠나가는 계절은 떠나 보내며 그래도 너는 모두 거두어들인 들판에 말없이 나에게 와서 어깨를 기대는구나. 꽃의 입김이 따스한 것도 이제 알겠구나. © 김정기 2010.12.06

|詩| 조명 관계

삼각형의 각도가 문제였어 검정 옷을 걸친 정통파 유대교의 지저분한 수염 속에 깊숙이 숨어있는 모세의 비밀, 빛이 추는 춤사위, 깡마른 손가락이 긁어내는 곡선 따위가 관심사였어 삼각형 뿐만 아니었지 진흙 속에 사족(四足)을 튼튼히 박아 놓은 직사각형도 골치 아팠다 행실이 방정한 직사각형도 당신이 고개를 갸우뚱할 때 나도 덩달아 상체가 기우뚱한다 세상에 수직이나 수평은 없어 사랑도 구원도 없다 우리는 욕심이 없어요 둘 다 고해상도로 선명한 조명을 원할 뿐 다만, 빛의 각도에 따라 당신과 내가 천 개 만 개로 분산되는 불씨이기를 삽시간에 사라지는 망실이기를 © 서 량 2010.06.27 -- 네 번째 시집 에서

발표된 詩 2021.05.12

|詩| 목 속의 장작불

목 속에서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어요 목 속으로 봄바람이 연거푸 스며들어요 목 속 어디엔가에 내 유연한 유년기가 실개천처럼 흘러넘쳐요 오밤중에 겨울 숲 속을 헤매는 목이 짧은 동물 그림자가 아른거려요 나는 그 귀여운 동물의 정체를 알아냈어요 분명치는 않지만 아주 분명치는 않지만 불 기운이 트럼펫 소리보다 더 귀에 따가워요 샛별 같은 갈망의 불씨가 탁탁 튀잖아요 오, 불길이 가오리연처럼 미친 가오리연처럼 차가운 하늘로 치솟고 있어요 나는 뒤늦은 깨달음의 허리띠를 조여 매고 푸짐한 털목도리로 목을 감쌉니다 함박눈이 공손히 내리는 3월초에 나는 아무래도 당신의 침범을 이겨낼 재간이 없어요 © 서 량 2009.03.03

2009.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