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 2

겨울 도시 / 김정기

겨울 도시 김정기 혼자 썩어가는 영하의 노을 회색 장막을 치고 문을 닫는다 두 줄기 양란을 배달하는 아이의 발걸음에서 빠르게 와버린 겨울의 속살이 보인다. 공원의 나무들 눈물겨운 숨소리 땅에 묻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안개로 서려온다, 뼈아픈 것끼리 이루는 화음이 헐거워진다. 겨울 박물관에서는 엉겅퀴 꽃 한 송이에 모든 햇빛을 쏟아 붇는다. 낯익은 한글 간판이 목청껏 소리 지르는 한인 타운에서도 동행이 없이 스스로 작아지는 어둠이었다. 30번을 맞는 겨울이건만 타관은 타관이어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찬바람이 와서 손을 잡는다. 그래도 붙잡혔던 우리 집 단풍나무 잎새 몇 잎이 짧은 겨울 해 어깨위로 조용히 몸을 눕힌다.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식이다. 그러나 도시는 더욱더 현란해진 불빛에 취하여 비틀거..

겨울사람 / 김종란

겨울사람 김종란 겨울사람은 언저리에 닿고 싶다 담배를 태우면서 화면 가득 노래 부르는 샹송가수 그 부드러운 미소 거침없는 커다란 눈과 입 살아있으므로 닿을 수 있다 이제 겨울 한 가운데서 수프를 끓이면서 보내는 시간 겨울 밤 불빛들은 가슴 언저리 꽃처럼 머물다 간다 추운 것을 함께 견디려 하다가 짐짓 더 추운 것을 서로 덤으로 얹어 주면서 겨울사람 하나 영화속으로 들어가고 샹송가수는 걸어나와 수프를 끓인다 겨울사람 영화속에서 커피잔 언저리 살짝 두드리며 입술에 와 닿았던 향기의 소소한 부분을 불러낸다 칼로 말을 자르는 추운 부엌에서 샹송가수는 부드럽게 노래를 불러준다 남겨진 겨울사람에게 © 김종란 2009.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