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구니 3

우유 따르는 여자 / 김정기

우유 따르는 여자 김정기 아직도 여자는 우유를 따르고 있다. 삼백 년도 넘게 따른 우유는 넘치고 넘쳐서 어디로 해서 어느 강으로 몸을 섞었을까. 왼쪽 창문을 통해 들어온 태양은 여자의 왼쪽 팔에서 튀고 짙은 남색 앞치마에 안긴다. 그리고 머릿수건 뒤에 가서 빛으로 조용히 머문다. 허름한 부엌 벽 위에 걸린 바구니 속에 담긴 곡식은 아마 지금쯤 싹이 나서 셀 수 없는 낱알을 만들었겠지 그러나 보았다, 식탁보 밑에 깔린 두꺼운 어두움 알 수 없는 그 나라의 냄새가 풍겨온다. 베르미어*는 신들린 붓으로 고요를 만들고 순하게 네모 반듯한 감옥에 서서 끝없이 우유를 따르고 있다 그 소리가 지금 나의 잔에도 스민다. 윗저고리의 황홀한 겨자 빛깔이 나부껴온다. 썩지 않는 빵들이 식탁 위에서 계속 발효되고 있다. *1..

넷이라는 숫자 / 김정기

넷이라는 숫자 김정기 여덟에 매어서 넷까지 덩달아 좋아했던 길 그 길가에 차 네 대가 주차하고 하필 그 네 번째가 새로 뽑은 차 8444일 때 네것 내것 가릴 것 없이 한참동안 황홀해짐을 누가 막으랴 꿈이 넷이라면 둘까지도 아끼며 걸어 온 길에 아직도 자갈들 구르지 않고 이끼 묻어 비바람 뜨거운 볕 당해내고 있으니 둘을 버리고 넷을 버리고 여덟까지 내던지고 앉은 섣달 초승 그래도 오늘아침 싸락눈이 잠깐 내리고 참새 떼가 마을로 날아 들더라 위트니 박물관에서 백 년 전 나뭇잎들을 쓸어 담아가지고 집에 와서 쏟으니 네 바구니 여덟 바구니를 채우려면 또 한 번 가 보아야 하겠네 세모의 어느 토요일 아침 어떤 백인 노부부처럼 품위 있게 손잡고 거기는 여덟층이 없으니까 사층에서 맴돌자 선으로 색으로 엉클어놓은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