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송이 3

진달래꽃 / 김정기

진달래 꽃 김정기 잠깐 잠든 사이 울타리에 진달래꽃 피었네 눈길을 피하려다가 들키고 만 꽃송이가 눈치를 보며 혼자서 귀뿌리를 붉히네 꽃잎들은 흩어진다 해도 남한강 노래를 흥얼거리며 안개 바다에 익사해도 오염된 대륙을 건너 바람도 거센 사막도 지나 당신의 뒷모습 따라 눈시울 적시며 새로 움트는 색깔로 고향 뒷산에 진달래로 태어나는 꿈을 꾼다네 봄의 무늬가 지워진다 해도 바람부는 계절의 틈새에 서서 꽃으로 지는 허공으로 걸어가리 © 김정기 2019.04.20

봄날 / 김정기

봄날 김정기 보이지 않는 물이 흘러간다. 몸 안에서 피어나는 안개가 가냘픈 실핏줄을 건드린다. 어두움은 가끔 힘줄을 만들어 어디까지 흘러 마지막 길을 트일 것인가. 어느 봄날 묻어두었던 사랑이 큰소리 내며 다가오는 황홀함. 갑자기 눈부신 세상과 아득한 것이 이루는 합창 내가 가는 길목에 우두커니 서 있는 봄 산수유가 주렁주렁 꽃밥을 터뜨리고 대책 없이 그늘 지우는 밑으로 그립다는 언어에는 눈을 돌리던 넝쿨들이 기어 올라오고 있다. 어디를 가나 당신의 흙이 묻어나는 터에 이 알뜰한 봄을 써 버리고 있다니 꽃송이 하나하나에 말 걸어보면 답장 없는 연서에 달콤한 말들을 내 이마에 쏟아 붇는다. 가는 봄날 한 자락을 붙잡고. © 김정기 2011.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