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3

|컬럼| 446. 관계

관계 그룹 사이즈가 12명 이상으로 커지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의 진행이 힘들어진다. ‘대화’는 그룹 멤버들 사이에 오가는 말, 또는 그룹 리더가 그룹에게 하는 말로 이루어진다. 16명이 극장식 좌석배열로 앉아있다. 심도 깊은 대화의 장을 열기는 어려울 것이다. 몇몇 적극적인 성격의 환자가 강의를 도와줄 것 같다. 오래전부터 ‘인간관계’라는 제목으로 환자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를 노려왔다. 걸핏하면 주먹다짐을 할 뿐더러 서로 깊게 미워하는 관계에 쉽게 빠지는 불안하고 다정다감한 여러 환자들이 내게 동기의식을 부추긴 점도 있다. ‘관계, relationship’의 예를 들어 봐라. 성미 괄괄한 한 환자가 숨가쁘게 대답한다. “남자가 여자를 만나 커피를 마시고 저녁을 같이 하고 섹스를 하고 결혼해서 행복하..

|컬럼| 262. 사랑과 공격

뉴욕 코넬 의과대학의 오토 컨버그(Otto Kernberg: 1928~) 밑에서 정신과 수련의 과정을 밟은 것은 내 직업 인생에 있어서 1970년대 중반에 터진 커다란 행운이었다. 현재 컨버그는 성격장애(Personality Disorder)의 진단과 치료 분야에서 세계 제일의 선구자로 손꼽힌다. 그는 우리 시대에 점차로 쇠잔하는 정신분석학에서 내가 존경하는 마지막 자이언트다. 체질적으로 언어에 지독한 관심을 품은 나는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약이나 수술보다 말을 사용하는 기법에 심하게 심취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던지는 질문이란 상대의 마음을 보듬어 파고드는 행위이면서 사람이 사람에게 심리적으로 도움이 되는 말을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고도의 기술과 경험을 요구한다. 마음이 마음을 치료한다는..

|컬럼| 334. 화학반응 관계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마치도 화학반응 같아. 그들이 우리를 변하게 하고 우리가 그들을 변하게 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달라진 상태에서 남들과 또 색다른 반응을 일으키는 거지. 그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Rust Creek’이라는 공포 영화에 나오는 말이다. 2019년 1월에 미국에서 개봉된 후 한국에도 ‘러스트크릭’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공포영화다. 러스트크릭은 산림이 우거진 켄터키 주 어느 음산한 작은 마을 이름. 위의 대사는 그곳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동네 불한당들에게 차를 뺏긴 뒤 사생결단으로 쫓겨 다니는 여자 주인공에게 숲속에서 혼자 사는 사내가 하는 말이다. 그는 양잿물과 성냥 따위를 섞어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가내공업으로 마약을 제조하는 아주 이상한 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