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포도송이 / 임의숙

서 량 2011. 9. 2. 05:23

 

포도송이

 

                                     임의숙

 

 

한 계절이 마른 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곳에는

잊은 기억들이 모여 산다

눈을 가리면 세상은 빈 상자.

고무줄을 띄는 계집아이의 파랑 치마 밑으로

튕겨진 빛의 빨간 꽃잎이 피기 전에

아이는 엄마를 잃었다.

소리 없이 너는 자라고

자궁 속 태줄 타고 올라 온 푸른 손바닥

설렘으로 핀 첫 꽃잎을 접어

겨울 이불 속에 묻어두었다.

한 계절이 마른 날

양수 누런 봉지를 벗어 버린

여물은 포도송이

침샘에 고여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