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고추장 항아리***
서 량
2008. 7. 7. 14:03
고추장 배 불룩한 항아리는 늘 반질반질했다 옛날에
간장이건 고추장이건 항아리가 꼭 그렇게 반질거리라는 법은
세상에 없어요 근데도 고추장 항아리는 순 고집불통이야
피자를 시켜 먹으면서 이태리 고춧가루 굵직굵직한
고추를 몰상식하게 듬뿍듬뿍 뿌려 먹다가 재채기가 나왔다
재채기는 나를 공식적으로 무안하게 만들어요 진짜로
내가 재채기를 하건 말건 이태리는 이태리고 뉴욕은 여전히
뉴욕인데 근데 그 순간 지구가 와장창 몸부림을 치더라니
고추장 항아리는 내 기억에서 아주 사라져도 좋아 근데
고추장 자체는 고추장으로 우주의 기록에 영원히 남아야 해
고추장을 뼈가 으스러져라 끙끙대면서 품고 있은 저 암팡진
고추장 항아리가 이젠 넘넘 든든하게 보여 진짜
© 서 량 2008.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