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맨해튼 북부
서 량
2020. 7. 5. 04:15
한 사람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맨해튼 북부 웨스트 사이드
너절한 거리를 걸어간다고 쳐
꽃집도 몇 군데 있는
개는 개대로 바보처럼 기뻐하고 개
주인은 인생을 정중하게 탐색하는 태도를
포기한지 한참 됐다거나 아니면 찌릿한
마음의 평온 같은 거나 죽음에
접근하는 서늘한 평화를 좋아하는 법을
목하 체득 중이라고 쳐 개 주인이
아니야 꼭 그런 상황이 아니면 어때요
설정이야 아무렴 어때요 우리 처음부터
다시 해요 응 그래 한 사람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맨해튼 북부 웨스트 사이드 한여름에도
늦가을인 듯 바람이 부는 거리를
개 다리 넷과 사람 다리 둘
도합 다리 여섯 개가 바쁘게
튼튼한 드럼 비트에 박자 맞춰서
쿵처적! 쿵척! 신나게 빠르게 걸어간다고 쳐
수정벽으로 쫘악 둘러 싸인 용궁 속에 앉아
적적한 바다 밑을 한 사람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슬로모션으로 걸어가는 장면을
당신이 아련히 응시하고 있다고 쳐
© 서 량 2007.08.07 --- 2020.07.04